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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믹스

불편한 시선과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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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입구에 있는 유달리 층이 낮은 복도식 아파트. 임대주택이다. 아파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지나가다 보면 금세 안다.

답이 뻔한데 왜 이렇게 지어놓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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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사이엔 길이 끊겨 있고,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다.

한쪽 사람들은 마음이 상할 게 뻔한데, 왜 이렇게 해놓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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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간단하다. 법은 있는데, 법이 없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소셜 믹스의 불편한 시선과 단절을 취재했다. 아울러 그 단절을 극복할 방안도 제시했다.

불편한 시선이

그들을 쪼갰다

소셜 믹스 왜 삐걱거리나

영등포 쪽방촌은 영구임대주택, 행복주택, 민양분양주택이 모두 건설되는 소셜 믹스형으로 구성된다.[사진=뉴시스]

“집값 떨어진다” “동네 분위기 안 좋아진다”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 공공임대주택을 향한 흔한 말이다. 이렇다 보니 매번 ‘임대동과 분양동을 차별하는 아파트’의 이야기가 갈등 소재로 떠오르곤 한다. 굳이 ‘임대아파트’와 섞여 살아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셜 믹스는 골칫거리가 됐을까.

글=최아름 기자eggpuma@thescoop.co.kr

100%. 정부가 내세운 ‘영등포 쪽방촌 개발 후 재정착률’이다. 영등포 쪽방촌에 새롭게 만드는 영구임대주책에 현 거주민 400여명을 모두 입주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밝힌 방법은 간단하다. 넓게 분포해 있는 쪽방촌을 높은 영구임대주택으로 수용하고, 남은 빈땅은 민간에게 개발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전체 1200세대 중 절반엔 민간주택, 나머지 절반엔 영구임대주택과 행복주택이 들어온다. 집을 사서 들어오는 사람들과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에 입주하게 되는 청년층, 원래 살고 있던 쪽방촌 거주민이 1만㎡(약 3000평) 용지에서 함께 살게 된다. 말 그대로 ‘소셜 믹스(사회 통합·Social Mix)’다.

 

소셜 믹스는 사회·경제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진 거주자들이 함께 사는 형태를 말한다. 유형은 다양하다. 영등포 쪽방촌 개발처럼 같은 부지 내에 ‘동별’로 주택을 배치하거나 ‘모자이크’처럼 같은 동 안에서 랜덤하게 임대주택을 섞어두기도 한다.

상생 등 긍정적인 기능이 많음에도 소셜 믹스는 그동안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돼 왔다. 임대 아파트는 다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하거나, 상대적으로 저층(7층)으로 만든 ‘메세나폴리스(마포구 합정동)’와 ‘디에이치 아너힐즈(강남구 개포동)’가 대표적인 예다. 상생을 위한 소셜 믹스가 되레 차별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등포 쪽방촌에서 추진되는 소셜 믹스(공공임대주택) 역시 같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닐까. 결과를 예상하려면 일단 ‘소셜 믹스’가 삐걱대는 이유부터 살펴봐야 한다. 토지주택연구원이 발간한 2020년 ‘LH 공공임대주택 이미지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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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가 짚은 소셜 믹스의 문제는 ‘불편’과 ‘보상’이다. 보고서는 영구임대주택·국민임대·행복주택 인근에 사는 아파트 거주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 결과를 담았다. 거주자들이 느끼는 불편은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로 모였다.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소란스럽게 만들거나, 가정의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이 면학 분위기 형성을 방해하는 통에 집값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소셜 믹스’를 반대하는 기존 주민들은 대부분 ‘재산상 피해’나 ‘사회적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 난해한 질문의 답을 찾아야 궤도를 이탈한 소셜 믹스의 제길을 되찾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소셜 믹스를 강제만 하고 뒷일은 나 몰라라 하는 ‘법’이다.

 

소셜 믹스 주민들의 엇갈린 속내

재개발 단지에 의무적으로 임대주택을 넣는 것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에 비율까지 정해져 있지만 입주 이후 운영 방식은 말 그대로 ‘맘대로’다. 임대거주자와 분양거주자가 전혀 마주치지 않는 방식으로 단지가 운영되는 게 불법이나 편법이 아니란 거다. 같은 비율로 소셜 믹스를 하더라도 단지마다 크게 효과가 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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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를 위해 일자리·보육·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공공임대주택’ 단지에 국한된다. 이 때문에 공공임대주택 주민들은 같은 단지 사람들이나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는 데는 도움을 받지 못한다. 소셜 믹스의 제맘대로 운영이 ‘거주민의 분절分節’을 부추긴 셈이다.

둘째 문제는 임대주택의 외형이다. 대부분 임대주택은 복도식 아파트로 만들어진다. 좁은 세대 면적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2019년 하반기 입주한 서울 성북구 900여세대 아파트 단지를 예로 들어보자. 단지 입구에 복도식 형태의 임대 아파트가 둥지를 틀었다. 다른 동과 달리 층수에서도 차이가 나 누가 보더라도 ‘임대 아파트’라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사실 외형의 문제는 또다른 심각함을 내포하고 있다. 외형이 거주민을 부자富者와 빈자貧者로 나누는 ‘기준’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셜 믹스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둘로 나눠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급 분양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에게 ‘거지’ 등 언어폭력을 행사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

아파트 단지로 만들어지는 영구 임대 아파트의 경우, 재건축 연한에 가까워져 노후화한 모습이 드러나거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지역 주민에게서 호감을 얻지 못하는 일도 흔하다. 외형은 생각보다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임대주택단지 근처에 사는 주민 중에서는 “깨끗하게 관리된 단지가 있어 임대주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만든 아파트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손 놓은 정부와 지자체

마지막 문제는 임대주택의 낡은 이미지다. 2013년부터 추진된 행복주택은 높은 주택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층이나 신혼부부를 위해 만들어진 임대주택이다. 이 때문에 단지 내에 청년층이 창업한 상점이나 신혼부부들이 어린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젊은 세대의 유입으로 지역 분위기를 환기하고 기존 지역 주민에게도 필요했던 공공시설이 들어온다는 거다. 그럼에도 행복주택을 건립할 땐 숱한 반대에 부닥쳤다. 빈민층이 들어와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행복주택의 순기능을 갉아먹은 탓이었다.

박지영 LH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서로 섞이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 공공임대주택과 분양주택 거주자 간의 골을 넓히고 있다”며 “거주자 간 교류가 이뤄지고 임대주택 덕분에 지역 공공서비스가 나아지는 효과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소셜 믹스를 둘러싼 갈등은 생각보다 깊고 크다. 정부가 호언장담한 것과 달리, 영등포 쪽방촌에서 진행되는 소셜 믹스가 진통을 겪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2014년에도 영등포동·문래동 주민들은 동네에 노숙인이 사는 주거시설을 반대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임대주택 들어오니

어린이집 생겼네

소셜 믹스 활성화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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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은 이미지가 좋지 않다. 취약계층이 거주하고 관리를 하지 않아 낡았다는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임대주택은 소셜 믹스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빈貧하고 낡았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해법도 임대주택 안에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세가지 방법을 찾아봤다.

글=최아름 기자eggpuma@thescoop.co.kr

소셜 믹스는 ‘풀어야 할’ 숙제다.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을 섞어야 하느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소셜 믹스를 포기해도 문제는 생긴다. 부동산 시장에 주택 배분을 맡기면 주택 가격에 따라 특정 지역이 슬럼화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이때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또다시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거주민의 재정착의 문제도 있다. 노후주택 밀집지역을 정비하기 위해 재개발을 시도할 경우 기존에 살던 거주민은 신규 주택가격을 감당할 수가 없다. 재개발을 마치고 신규 주택에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공존하는 소셜 믹스가 필연적이다. 소셜 믹스의 한 유형인 도심 속 공공임대주택은 고가 주택을 감당할 수 없는 사회 초년생, 주거취약 계층을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주택을 사거나 전세주택을 얻을 수 없다면 그다음으로 꼽히는 선택지는 ‘공공임대주택’이다(국토교통부·2018년도 주거실태조사). 청년층의 일자리가 도심에 몰려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입지가 좋은 고가 주택 단지 인근에 임대주택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소셜 믹스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소셜 믹스는 ‘풀 만한’ 숙제다. 부정적인 시선이 있지만 제도 자체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문제는 어떻게 숙제를 푸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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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비중 찾는다면… = 먼저 LH토지주택연구원이 2020년 발간한 ‘LH 공공임대주택 이미지 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펼쳐보자. 이 보고서에 담긴 인터뷰를 분석해보면, 임대주택 비중에 따라 인근 분양주택 거주자의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00% 비율의 영구임대주택 단지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보다 서초3단지(영구임대주택 비중 20%·국민임대주택 80%)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영구임대주택 임차인 일부의 행동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임대주택 단지만 공급하는 경우에도 적정 비중으로 소셜 믹스를 적용해야 한다는 거다. 공공임대주택 인근 거주 주민들은 “취약계층 비율이 너무 높지만 않다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피해를 보지 않는다면 꺼려질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행복주택 벤치마킹한다면… = 공공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임대주택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다. 소셜 믹스는 정부가 민간주택을 구입하고 다시 임대 거주자들에게 임대하는 방식을 취한다. 법으로 임대주택 비중을 정해뒀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커뮤니티 센터나 공공서비스센터 등은 의무설치 기준이 없다. 단지로 만들어질 경우 법정 커뮤니티 시설면적만 충족하면 된다. 그래서 분양주택 거주자와 임대주택 거주자가 나눠질 공산이 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건 행복주택이다. 행복주택의 경우, 정부가 만드는 임대주택이지만 국공립어린이집, 고용센터, 작은 도서관 등 공공서비스 시설이 함께 만들어진다. 공공임대 거주자뿐만 아니라 분양주택 거주자와 지역주민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피해’만 준다고 여겨졌던 임대주택의 이미지가 크게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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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계층이 거주한다면… = 임대아파트에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대부분의 공공임대는 60㎡(약 18평) 이하 주택으로 거주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이 한정적이다.

‘LH 공공임대주택 이미지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시민은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으로 만든다면 임대주택의 이미지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며 “중산층이 공공임대에 거주하는 경우 소득에 비례해 임대료를 내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주거복지 방안으로서 공공임대를 볼 것이 아니라 주거의 한 형태로 공공이 공급하는 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거다. 어려운 과제 같지만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정부가 아닌 주택조합이 나서 공공임대를 공급하는 유럽의 경우,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사회 초년생은 대부분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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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정부의 지원을 받은 주택협회가 공공임대주택을 만든다(해외 공공임대 주택의 사회통합 계획방향 사례 연구·2017). 노숙인 주택부터 일반 임대아파트, 노인용 주택, 고가 단독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주택을 공급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없다.

 

2020년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관리하는 임대주택은 100만호를 넘어섰다. 여전히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질적 성장도 간과할 수 없다. ‘소셜 믹스’가 피해로 느껴지지 않도록 공공임대주택 자체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거다.

“일반 분양아파트도 전부 부자만 사는 건 아니다. 임대아파트 사는 사람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있을텐데, 민간주택에 사는 사람들이나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공공임대 단지 인근에 사는 주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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