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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판매금지 의약품

‘버젓이’ 팔려나갔다

허술한 리베이트 처벌 규정의 문제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월 18일 동아에스티에 다음과 같은 행정처분을 내렸다. “2월 28일부터 5월 27일 3개월간 97개 의약품을 판매하지 말라.”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이유로 받은 처벌이었다. 하지만 동아에스티는 손쉽게 처벌망을 빠져나갔다. 3개월치 물량을 미리 판매하는 간단한 방법을 통해서였다. 문제는 이 판매행위가 ‘불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답을 단독 취재했다. 

기획·취재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제작=영상제작소 Vide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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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동아에스티는 올 1분기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지난해 1분기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012억원, 53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1.1%, 158.5% 뛰었고, 당기순이익은 109.6% 오른 468억원을 달성했다.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우려 등 잇따른 악재 탓에 대다수 기업들이 곡소리를 내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동아에스티의 성장세는 유독 두드러졌다.

사정이 괜찮다는 상위 제약사들 사이에서도 동아에스티만큼 고루 성장한 곳은 드물다. 1분기 잠정실적을 공개한 국내 제약사 빅5 중에서 종근당(56.2%)과 한미약품(10.8%)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동아에스티에 못 미쳤고, 유한양행(-37.0%)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나마 녹십자(283.6%)가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당기순이익에선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렇다면 동아에스티는 어떻게 깜짝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여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3개월치 추가물량을 유통업체에 사전 공급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2분기에 판매해야 할 의약품을 1분기에 ‘미리’ 팔았다는 얘기다. 1ㆍ2분기 판매량이 1분기 판매량으로 한 번에 잡힌 셈이니 실적이 가파르게 증가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제품을 미리 판매하면 1분기 실적은 올라가도 2분기엔 공백이 생긴다. 당연히 연간 실적으로 따지면 큰 차이가 없다. 굳이 미리 팔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동아에스티가 제품을 앞서 판매한 데는 그들 나름의 전략적 판단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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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에스티는 2월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았다. 처분 내용은 이렇다. “3개월(2월 28일~5월 27일)간 97개 의약품의 판매업무를 정지하고, 1개월(2월 28일~3월 27일)간 9개 의약품의 판매업무를 중단하라.” 

동아에스티가 162개 의약품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2009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55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병ㆍ의원에 제공한 이유로 받은 벌칙이다. 동아에스티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의 강정석 회장이 당시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정도로 작지 않은 사건이었다.

식약처의 행정처분을 따르면 3개월 간 치명적인 손실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동아에스티가 의약품을 선판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매업무정지 기간에 생기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시쳇말로 ‘미리 팔아 치워버린’ 셈이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어떻게 가능했느냐다.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법을 위반해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할 기업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법적ㆍ행정적 공백이 있는 건 아닐까. 답을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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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식약처가 금지한 건 ‘동아에스티의 판매행위’다. 하지만 동아에스티로부터 사전에 의약품을 공급 받은 ‘도매상이 판매하는 행위’는 금지하지 않았다. 동아에스티가 직접 판매하지만 않으면 도매상이 동아에스티의 의약품을 팔아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다. 

이를 감안하면 식약처가 행정처분을 내린 2월 18일과 판매업무정지가 시작되는 2월 28일 사이에 동아에스티가 도매상에 3개월치 물량을 미리 넘겨도 위반행위가 아니다. 식약처의 행정처분은 근거법령을 따랐다. 그렇다면 동아에스티가 처벌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도 법적 공백 때문이란 얘기가 된다. 

법조문을 좀 더 자세하게 따져보자. 동아에스티가 병ㆍ의원에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건 “의약품 공급자는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약사ㆍ의료인ㆍ의료기관 등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면 안 된다”고 정의한 ‘약사법 47조 2항’을 위반한 행위다. 

약사법 47조 2항을 위반했을 때 어떤 행정처분을 내려야 할지는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에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동아에스티가 받아야 할 페널티는 ‘판매업무 정지 3개월’이 맞다.

하지만 “도매상을 통해 판매해선 안 된다”는 등의 세부규정은 없다. 분명한 법적 공백이다. 더구나 제약사가 도매상을 통해 의약품을 판매하는 건 흔한 판매 경로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제약사의 직접적인 판매행위만 막은 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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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동아에스티에 책임을 물을 방법이 전혀 없는 걸까.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를 ‘법률적 회색지대’라고 지적했다. 법률적 회색지대란 말 그대로 법을 위반했는지 위반하지 않았는지 판단하기가 애매한 지점을 말한다. 

김진우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동아에스티의 판매행위가 형식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행정처분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그럴 때 행정청이 이전의 판매실적 흐름과 비교해보고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부자연스러운 거래’라고 판단하면 가중처벌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에스티가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행정처분을 회피한 데 따른 처벌을 받을 여지가 있다는 거다. 물론 추가 행정처분을 받아도 동아에스티가 불복하면 치열한 법적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모든 게 식약처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가 동아에스티에 추가 행정처분을 내릴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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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뉴시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식약처는 법적 공백이나 꼼수가 있다고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판매업무를 정지하기 전에 제품을 판매하는 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면서 “동아에스티가 행정처분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도매상이 판매하는 것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고 일축했다. 

동아에스티가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행정처분을 받았다. 법을 어겼으니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라는 거다. 대가는 판매업무정지로 인한 손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페널티를 받지 않았으니,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다. 동아에스티가 올 1분기 깜짝 실적을 달성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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