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는 정말 롯데푸드에 을질을 했을까

대기업 전속거래가 도약의 발판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부당대우는 끝이 없었고 거래는 금세 끝났다. 을乙 중에 을이었던 하청업체 대표는 이곳저곳에 민원을 넣은 끝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대기업은 “재기를 돕겠다”고 약속했다. 뭔가 석연치 않았는지 편법까지 동원하면서 도왔다. 하지만 지금 이 협력업체는 ‘을질’을 했다면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롯데푸드와 후로즌델리 전은배 대표의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롯데푸드와 후로즌델리의 분쟁사 풀스토리를 공개한다. 

기획‧취재=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기획‧취재=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제작=영상제작소 Video B

롯데푸드-후로즌델리

분쟁 분석

 [사진=연합뉴스]

아이스크림을 생산하던 중소기업 후로즌델리에 전속계약 제의가 온 건 2005년이었다. 상대는 대기업 롯데푸드(당시 롯데삼강). 롯데가 요구한 규격대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기계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금에 친척ㆍ지인들로부터 빌린 돈까지 털어 넣었다.

하지만 전속계약 3년 차에 갈등이 생겼다. 2008년 5월 롯데푸드 직원들이 공장을 방문해 욕설을 늘어놨다. 설비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롯데 빙과류 협력업체 중 이 돈을 못 받은 건 후로즌델리가 유일했다. 2010년부턴 롯데푸드 내부에서 ‘후로즌델리 거래 중단’을 검토했다. 멀쩡히 잘 거래하던 협력업체를 잘라내기 위한 수단으로 ‘해썹(HACCP) 미인증’을 걸고넘어졌다. 당시 후로즌델리의 해썹 인증 기간은 2년이나 남아있었다. 이 회사 전은배 대표는 ‘못된 갑질’로 받아들였다. 

2010년 9월, 참다못한 전 대표는 롯데푸드에 ‘계약 종료’ 통보를 보냈다. 동시에 기계설비 매입을 요청했다. 롯데푸드 제품을 위해 만든 설비였으니 되사라는 거였다. 합당한 요구였다. 롯데푸드 역시 이를 수용했다. 테스트를 진행한 다음 ‘매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햇수로 6년 동안 이 설비로 아이스크림과 팥빙수를 생산해 롯데푸드에 납품했다. 테스트를 하겠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결과는 더 납득할 수 없었다. 롯데푸드는 ‘부적합’을 통보했다. 

테스트 결과, 롯데푸드의 규격에 맞는 제품이 전체의 28%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롯데푸드는 이후 ‘납득 못할 행보’를 보였다. 테스트에서 생산한 제품이 불량이라더니, 그 제품을 시중에 내다 팔아버린 것이다. 전속거래가 끊긴 채 전전긍긍하던 전 대표는 ‘울화’가 치밀었다.
 

이곳저곳에 민원을 제기했다. 롯데그룹 신문고에도 넣었고(2011년 4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내용증명(2011년 8월)을 보내기도 했다. 2013년 5월엔 사건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그러자 미디어가 주목했고, 다음은 국회의원이었다. 2014년 국정감사에 롯데그룹 핵심 경영진의 출석이 예고됐다. 

4년간 꿈쩍도 하지 않던 롯데그룹이 움직였다. 작은 협력업체와의 분쟁으로 그룹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는 말자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롯데푸드 대표(현 이영호 롯데그룹 식품BU장)가 직접 위로금 7억원과 ‘재기의 발판’을 약속했다. 자사에 납품되는 수많은 물품 중 조건이 맞는 게 있으면 최우선적으로 납품 기회를 주겠다고도 했다. 전은배 대표는 이런 내용이 담긴 상생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2015년 2월 전 대표는 롯데푸드에 ‘납품’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납품 거래는 금세 끝났고, 합의는 산산조각 났다. 다시 국회가 롯데푸드를 질책하고 나섰다. 

2016년 국정조사 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부터 “사실관계를 파악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2018년 국감장에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당시)을 향해서 질의가 쏟아졌다. “롯데푸드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후로즌델리라는 아이스크림 회사가 있었습니다. 부당한 이유로 파산했습니다. 전속거래로 인한 폐업, 도산은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겁니다(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뉴시스]

2019년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이슈로 등장할 조짐이 보이자 롯데가 다시 움직였다.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가 전 대표를 찾아가 “현금 1억원을 줄 테니 분쟁을 마무리하자”고 회유했다. 끊겼던 납품 거래를 다시 진행하자는 뜻도 은근슬쩍 내비쳤다. 전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2019년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전 대표에게 읍소를 하던 조경수 대표는 국감 증인석에선 다른 말을 내뱉었다. “전은배 대표가 감당할 수 없는 부당한 요구를 해왔다. 후로즌델리는 부도가 나 실체가 없는 회사여서 납품권을 주기도 어려웠다.” 전은배 대표는 순식간에 악성 민원인으로 전락했다. ‘을질의 대명사’란 호된 질책도 받았다. 

하지만 합의를 종용하며 현금을 주겠다고 했던 건 조 대표였다. “실체가 없는 회사여서 납품권을 주기 어려웠다”는 주장도 거짓이다. 더스쿠프(The SCOOP) 취재 결과, 롯데푸드는 2015년 자신들의 협력업체를 ‘서류상’으로 끼워넣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전 대표에게 납품권을 줬고, 실제로 거래가 진행됐다. [※ 참고 : 품목은 분유박스였다. 전 대표가 박스 제조사와 계약할 무렵, 롯데푸드가 ‘그룹사 납품 실적 있는 회사’를 협력업체로 요구해 편법 거래가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롯데푸드는 전은배 대표에게 ‘위약금 7억원 반환 소송’을 걸었다. 롯데푸드와 있었던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돈도, 명예도 날린 전 대표는 또다시 벼랑에 몰렸다. 그는 정말 ‘을질’을 한 것일까. 롯데푸드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망한 협력업체 CEO의 울분

“롯데푸드 갑질 맞섰더니

을질했다더라” 

롯데푸드-후로즌델리 분쟁의 역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97년 도산한 아버지의 회사(우성냉동)를 일으키는 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2001년에야 경매로 넘어간 회사의 공장을 낙찰받았다. 아들은 아이스크림을 만들던 아버지 회사의 낡은 시설을 정비하고, 간판을 ‘후로즌델리’로 바꿨다. 전은배 후로즌델리 대표가 가업을 잇는 순간이었다. 

빙그레(2003년), 해태제과(2004년) 등과 거래를 텄다. 매출이 많진 않았지만 거래선이 회복됐다는 점은 의미가 컸다. 2005년부턴 롯데푸드(당시 롯데삼강)의 ‘전속거래 협력업체’가 됐다. 충남 천안에 새 식품공장을 완공한 롯데푸드로선 현지 협력업체가 필요했고, 후로즌델리(아산시)가 낙점을 받았다. 

롯데푸드에 팥빙수 제품을 단독으로 납품하게 된 후로즌델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롯데푸드가 요청한 규격대로 제품(팥빙수ㆍ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생산설비를 재구성했다. 전은배 대표는 “당시 롯데가 요구한 규격을 맞추기 위해 쓴 돈이 3억5000만원가량이었다”고 털어놨다. 투자 성과는 뚜렷했다. 단독 파트너가 되자 물량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2004년 연매출 14억원에서 전속거래를 시작한 후로즌델리의 2005년 매출은 3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롯데푸드와의 관계는 3년 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롯데푸드 직원이 후로즌델리 공장에 난데없이 찾아와 ‘갑질사건’을 벌인 게 신호탄이었다. 당시 롯데푸드 직원이 공정위에 제출한 진술서를 보자. “…진술인은 2008년 5월 6일 후로즌델리를 방문했습니다. 대표도 없는 공장에서 생산본부장이 직원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사장에게 보고해서 생산을 중단시키고 거래를 못하게 잘라버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롯데푸드와의 관계는 3년 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롯데푸드 직원이 후로즌델리 공장에 난데없이 찾아와 ‘갑질사건’을 벌인 게 신호탄이었다. 당시 롯데푸드 직원이 공정위에 제출한 진술서를 보자. “…진술인은 2008년 5월 6일 후로즌델리를 방문했습니다. 대표도 없는 공장에서 생산본부장이 직원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사장에게 보고해서 생산을 중단시키고 거래를 못하게 잘라버린다고 했습니다….” 

롯데푸드의 압박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협력업체 설비지원 대상에서 후로즌델리를 제외했다. 2010년 2월 롯데푸드 시설팀이 작성한 ‘빙과 외주 설비 대여 현황’에 따르면 후로즌델리가 받은 지원내역은 ‘제로’였다. 많게는 20억원에 이르는 설비지원을 받은 협력업체도 있었으니, 전 대표로선 억울할 법도 했다. 이 내용은 당시 롯데푸드 직원의 진술서에서도 확인된다. “…후로즌델리에만 불합리하게 기계설비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 

후로즌델리가 받은 부당한 대우는 또 있었다. 2010년 들어 롯데푸드는 거래를 끊으려는 시도를 수없이 했다. 1월 25일 작성된 롯데푸드 임원협의체 회의록에서 발췌한 문장을 보자. “…후로즌델리는 왜 계속 거래를 해야 하는가(존속예정인가). 타사 (생산) 검토 안 했나. 얼음설비 설치해주면 생산가능 업체 검토하거나, 최악의 경우 운영중단도 고려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롯데푸드 생산지원실은 일종의 ‘퇴출 플랜’을 좀 더 구체화했다. 2월 8일 이 부서가 작성한 ‘외주 중장기 운영안’에는 ‘스트레이트 라인 본사 투자시 검토안’ ‘팥빙수꽁꽁 ◯◯◯(다른 빙과류 하청업체) 투자시 검토안’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후로즌델리가 생산하던 팥빙수 제품을 본사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다른 하청업체에 일감을 줄 경우 필요한 비용과 설비를 따져본 시나리오였다. 

그렇다고 롯데푸드가 멀쩡히 거래하던 협력사와의 관계를 끊을 순 없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2010년은 공정거래위가 ‘불공정하도급행위에 대한 감시 및 시정 강화’를 목표로 하도급 정책들을 가다듬고 있던 시기였다. 

롯데푸드는 거래 중단 구실로 ‘해썹(HACCP)’을 꺼내들었다. 이는 앞서 살펴본 롯데푸드의 ‘외주 중장기 운영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후로즌델리 2010년 12월까지 해썹 미인증시 운영 중단 통보….” 해썹은 식품 원재료부터 생산과 가공ㆍ유통 공정에서 발생하는 위해요소를 관리하는 위생관리제도다. 2010년 당시 후로즌델리는 해썹 미인증 기업이었다. 

전속거래 3년 만에 ‘흔들’ 

하지만 해썹은 후로즌델리와의 관계를 끊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당시 정부는 회사 규모(매출액ㆍ종업원 수 기준)와 업종에 따라 해썹 의무인증 단계를 4개로 나눴다. 2010년 매출액은 50억원대였지만 정직원은 5명에 불과했던 후로즌델리는 ‘4단계(연 매출액 1억원 미만 또는 종업원 수 5인 이하)’에 속했다. 4단계 업체는 2012년 12월 전까지 인증을 받으면 됐다. 해썹은 롯데푸드가 전속거래 해제를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롯데푸드의 등쌀에 시달리던 2010년 9월, 전은배 대표는 롯데푸드 측에 “2010년을 기점으로 거래관계의 중지를 통보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요청을 했다. “기계설비 매입을 요청한다. 전적으로 롯데 제품만을 생산하기 위한 설비였던 만큼, 이 설비의 경쟁업체 유출은 롯데에도 큰 손실이 될 것이다.”

전 대표는 팥빙수 생산설비(7억원), 펜슬라인 설비(쭈쭈바ㆍ3억원) 등 총 10억원을 요구했다. 이 설비가 롯데푸드의 제품 생산을 위해 개발ㆍ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당한 요구였다. 롯데푸드 역시 기계 매입에 관심을 보였다. 2010년 12월 24일 롯데푸드 천안공장에서 관련 회의가 열렸던 이유다.

[※ 참고: 이는 전 대표의 기계매입 요구가 과하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다. 요구가 터무니없었다면 롯데푸드가 관심을 보일 필요도 없었다.]

 

여기엔 김용수 당시 롯데푸드 대표(현 롯데중앙연구소장)와 임원, 전은배 대표가 동석했다. 이 자리에서 전 대표는 “장비 테스트 후 설비의 분당회전속도(rpm)가 30이 나올 경우 매입하겠다”는 설명을 들었다. 2011년 2월 9일 장비 테스트가 열렸지만 전 대표는 실망스러운 답변을 받았다. “롯데푸드가 원하는 품질을 충족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설비 매입 검토 건은 불가함을 알린다.” 

전 대표는 공문을 보내 반박했다. 6년간 롯데푸드 제품을 생산한 기계가 느닷없이 ‘불량’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롯데 측은 테스트 결과를 보여줬다. ‘제품 중량편차 발생’ ‘믹스 충전 불량’ ‘얼음 품질 불량’ 등 문제가 수두룩했다. 

[사진=연합뉴스]

제품 불량이라더니 시중에 팔아치워

하지만 ‘불량’이라는 롯데푸드의 주장은 뒤늦게 거짓으로 드러났다. 롯데푸드는 당시 테스트 차원에서 생산한 제품 6603개의 박스 중 6100개의 박스를 시중에 내다 팔았다. 이는 롯데푸드 직원의 발언(2013년 9월 10일 통화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녹취록을 그대로 옮긴다. 

“…기계 테스트 6600박스 생산 중 6100박스를 시장에 팔았다. 롯데 내부 관리규격에는 맞지 않았지만 일단 판매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영호 전 롯데푸드 대표(현 롯데그룹 식품BU장)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어어 그래, 팔았어. 맞아.(2014년 8월 18일 녹취록)”

어쨌거나 롯데푸드와 후로즌델리의 협상은 틀어졌다. 기계 매입 건도 물 건너갔다. 롯데푸드의 전속거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 설비투자까지 단행했던 전 대표는 사업을 접었다. 남은 건 롯데푸드를 위해 만든 맞춤형 기계설비와 어마어마한 빚뿐이었다. 억울했던 그는 2011년 4월 롯데그룹 신문고에 진정서를 냈다. 8월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도 내용증명을 보냈다.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에서 변곡점變曲點이 생겼다. 2013년 5월 전 대표가 사건을 공정위에 제출한 이후 미디어가 주목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선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증인 리스트’에 올랐다. 

꿈쩍도 않던 롯데가 ‘유화 제스처’를 보낸 건 이때부터였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2014년 국정감사의 굵직한 이슈 중엔 유독 롯데 건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숙원사업이던 롯데월드타워의 완공을 앞두고 있었지만 ‘석촌호수 수위변화’ ‘비상계단 관리소홀’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 경영진의 국감 출석은 그룹 입장에서 ‘비상’이나 다름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2014년 8월 18일, 전 대표는 롯데푸드의 요청으로 이영호 롯데푸드 대표(당시)를 만났다. 전 대표는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고, 이 대표는 공감했다. 숱한 민원을 외면하던 지난 4년여와는 달랐다. “우리 회사(롯데푸드) 일을 하다가 결과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자체가,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사진=뉴시스]

이영호 대표는 합의를 원했다. 전제는 ‘전은배 대표의 피해 회복’이었다. 후로즌델리 공장은 롯데와 계약이 해지된 직후 멈춰 섰다. 롯데 제품에 설비를 맞춘 ‘전속거래’였던 만큼 다른 납품처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4년 1월 공장이 경매에 넘어갔다.  

전 대표는 경매로 넘어간 공장을 되찾길 원했지만 롯데푸드 측이 거절했다. 대신 롯데푸드는 ‘위로금’ 7억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금액으론 전 대표가 입은 피해를 복구할 수 없었다. [※참고 : 전 대표가 롯데푸드의 요청으로 후로즌델리 설비에 투자한 금액만 6년간 17억원에 달했다. 금융권 대출원금 30억원이 쌓여있었고, 전 대표는 이 과정에서 신용불량자(2014년 1월)로 전락하기도 했다.]

애초 전 대표의 요구는 현금이 아니었다. 재기였다. 롯데푸드의 부당한 대우로 하도급 관계가 끊겼으니, 이를 회복하고 싶었다. 롯데푸드 역시 전 대표의 주장에 동의했다. 이는 이영호 대표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나는 (전 대표의 말이) 억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 다른 어떤 사업을 해서 복구가 됐다고 하면 문제가 없어. 우리 일을 하다가 거래가 중단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까.” “돈(위로금)도 돈이지만, 좀 지속적으로 우리가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한번 생각하면 좋은데.” 


 

합의의 초점은 ‘납품’에 맞춰졌다. 롯데푸드에 납품되는 수많은 물품 중 하나를 전 대표가 맡는 것이었다. 2014년 8월 19일 대표이사 미팅이 또 열렸다. 합의서의 조항을 협의했는데, 전 대표에게 롯데푸드에 납품할 권리를 주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영호 대표는 경영지원이사에게 “그 납품, 그 문장 하나 넣어라”고 지시했다. 

이튿날인 8월 20일, 양측은 상생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4년간 이어졌던 분쟁이 이틀만의 대화로 합의됐다. 합의서엔 ▲합의금 7억원 ▲후로즌델리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제기한 롯데를 상대로 한 모든 민원 취소 ▲합의와 하도급계약 관련 사실 유출하지 않음 등이 담겼다. 핵심 조항인 ‘납품권리’도 들어갔다. “롯데와 후로즌델리는 향후 상생을 위해 후로즌델리 또는 전은배가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롯데의 품질 및 가격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 우선적으로 채택하도록 한다.” 

전 대표는 롯데푸드로부터 7억원을 받았다. 공정위 고발건을 취하했고, 이인원 전 부회장이 2014년 국감 증인으로 불려 나오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양측의 분쟁은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화해 무드는 그때뿐이었다. 국정감사가 열릴 때면 양측의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6년 12월 6일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 자리에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질타를 받기도 했다. “최순실 같은 강자한테는 이렇게 쉽게 주는데 … 후로즌델리라는 납품업체가 있습니다. 롯데의 갑질로 망했어요. 그래서 상생협약을 했는데, (롯데푸드가) 그때 사인한 것들 하나도 안 지킵니다(정유섭 미래통합당 의원).” 

2018년 10월 열린 정무위원회 국감에서도 후로즌델리가 등장했다. 공정위를 대상으로 대기업 갑질 이슈를 다루는 자리에서였다. “롯데푸드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후로즌델리라는 아이스크림 회사가 있었습니다. 부당한 이유로 파산했습니다. 전속거래로 인한 폐업, 도산은 앞으로도 문제가 될 겁니다(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뉴시스]

2016년 질타 받은 신동빈 회장 

그로부터 1년 후인 2019년 10월 보건복지위 국감에선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가 증인대에 섰다. 하지만 조 대표는 이상한 뉘앙스의 말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전은배 대표와 후로즌델리는 이미 실체가 없는 제조회사였다. 부당한 요구, 실제로는 다른 경유매출(실물 이동 없이 서류상으로만 이뤄지는 거래)을 하고자 하는 요구를 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었다.” 합의금 7억원을 지급했는데도 전은배 대표가 ‘을질’을 하고 있다는 호소였다. 

대기업 갑질 이슈라면서 집중포화를 퍼붓던 언론은 이번엔 롯데푸드의 입장을 대변했다. “롯데 ‘을의 횡포’에 골머리” “신동빈 국감출석 압박하며 민원해결 종용” “10년전 팥빙수 때문에 또 국감 소환당한 롯데” 등이 헤드라인으로 장식됐다. 

전 대표는 순식간에 ‘악성 민원인’으로 낙인찍혔다. 당시 언론이 제기한 ‘을질의 근거’는 크게 넷이다. 첫째, 전속계약이 끊긴 건 후로즌델리의 식품 위생 문제 때문이었다. 둘째, 2014년 합의서를 작성하고 합의금 7억원을 주면서 분쟁이 마무리됐다. 셋째, 후로즌델리가 부도난 상황이었는데도 전 대표가 과도한 납품권을 요구했다. 넷째, 전 대표가 국정감사 출석을 빌미로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

전 대표가 ‘을의 횡포’를 부렸다는 이 근거들은 타당할까. 먼저 “롯데푸드와 후로즌델리가 계약을 끊긴 건 식품 위생 문제 때문이었다”는 주장은 앞서 언급한 분쟁의 역사를 통해 반박된다. 후로즌델리의 해썹 인증 기간엔 2년의 여유가 있었다. 더구나 양측의 계약을 끊자면서 내용증명을 보낸 건 롯데푸드가 아니라 전 대표였다. 

“후로즌델리에 합의금 7억원을 주면서 분쟁이 마무리됐다”는 것 역시 궤변이다. 앞서 살펴봤듯, 양측의 합의는 7억원이 아닌 납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전은배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롯데푸드의 횡포로 계약이 틀어졌고, 손해가 막심했다. 이를 회복할 방법을 찾던 중 롯데푸드 측이 제시한 게 지속가능한 수익사업, ‘납품’이었다. 롯데와 납품거래를 통해 피해를 정상화하자는 거였다. 합의금만 받고 끝낼 문제였다면 애초에 합의서에 사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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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질의 논거는 거짓

타당치 않은 근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양측 분쟁에 을질 프레임이 씌워진 핵심 이유를 다시 보자. “후로즌델리는 실체가 없는 회사였고 (때문에 납품권을 주기 어려웠고), 과도한 요구가 있었다(조경수 대표ㆍ2019년 국감).” 미디어는 이를 상세하게 풀어 썼다. 국감 당시 나왔던 기사의 한 토막을 보자. “2015년 후로즌델리가 식용유를 만드는 원유 물량의 50%와 분유 종이박스 우선 납품권을 주장했다. 롯데푸드가 배임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이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 전 대표에게 납품권을 먼저 준 건 롯데푸드였다. 이 과정에선 ‘편법’까지 동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계추를 2014년 12월 31일로 다시 돌려보자. 양측이 상생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4개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롯데푸드 구매담당 이사가 전은배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스(납품)를 한 2개월 정도 (거래) 잘하고 하면, 좀 확대해서 검토해보자는 게 사장님(이영호 대표) 생각입니다.”

전은배 대표는 2015년 2월부터 분유박스를 롯데푸드 파스퇴르 공장에 납품했다. 그런데 이 거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롯데푸드가 ‘그룹사 납품 실적이 있는 회사’를 협력사로 요구하면서 양측의 거래에 ‘제3자’가 끼어들었다. 롯데그룹 계열사에 박스를 납품하던 협력업체 A사였다. 실제론 전은배 대표와 계약을 맺은 회사가 박스를 제조ㆍ납품했지만, 서류상으론 A사가 납품회사인 것처럼 꾸몄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이를 ‘3쿠션 편법 매출’이라고 부른다.  

앞서 언급했던 ‘을질’ 관련 기사의 설명대로라면(2015년 후로즌델리는 납품권을 주장했다. 롯데푸드가 배임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이 거래는 배임이다. 그래놓고 “납품권을 줄 수 없고, 실체도 없는 후로즌델리가 과도한 요구를 한다”면서 말을 바꿨다. ‘무고한 대기업-나쁜 협력업체’의 구도를 짜기 위한 무리수였다.  

“국정감사 출석을 빌미로 전 대표가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는 주장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롯데푸드가 전 대표에게 현금을 주겠다면서 애걸복걸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위 국감을 한달여 앞둔 2019년 9월 23일, 조경수 대표는 전은배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통사정했다. “전 대표님 만나서 한판에 끝내려고 합니다.” “요구하는 수준하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하고 합의점을 보자는 겁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납품권 편법으로 줘놓고선…

조 대표는 충남 예산까지 내려가 전 대표를 만났다. “대표이사 앞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게 1억원 미만입니다. 현금을 지원하면 기계 반납하기로 한 것 아예 없었던 것으로 매듭짓고, 그다음에 이게 ‘우리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납품)’는 건 정말 합리적인 방법하고 금액으로…(찾아 나갑시다).”

조 대표는 사비私費까지 털겠다면서 설득했다. “제시한 금액은 개인 거라도 내가 하려고 지금 마음을 먹고 (왔습니다.)” 전 대표는 조 대표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합의서를 쓰고 5년이 지났지만 사정은 나아진 게 없었다. 여전히 신용불량자 신세였고, 재기의 발판도 마련되지 않았다. 롯데푸드 측이 편법으로 제공한 분유박스 납품의 마진은 제로(0)였다. 그마저도 금세 끊겼다. 더는 롯데란 기업을 신뢰할 수 없었다.” 

롯데푸드는 지난해 11월 전 대표를 상대로 ‘위약금 7억원 반환소송’을 냈다. 합의서의 비밀유지 조항을 어겼다는 이유에서였다. 더스쿠프는 롯데푸드 측에 ‘전속계약 해지 이유’ ‘납품조항 실행 계획’ ‘3쿠션 납품 진행한 이유’ 등을 정리해서 물었다.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언급이 적절치 않다. 소송이 완료되는 시점에 정리해서 답변하겠다.” 소송이 끝난 뒤 롯데푸드는 어떤 답변을 해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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