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사모펀드 이중시선

2000년 초반만 해도 그랬다. 서민들에겐 저축이 최고의 투자였고 자산가들은 부동산을 수집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발전하자 이런 행태가 조금씩 바뀌었다. 복잡하고 낯선 이름의 금융상품이 ‘대체투자’란 이름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선전해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지만, 손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은 숨겼다. 그렇게 2008년 키코(KIKO) 사태가 터졌다.
 
최근엔 사모펀드 쇼크 때문에 난리다. ‘원금 손실’ ‘폰지 사기’ ‘불완전 판매’ 등 투자자라면 벌벌 떨 수밖에 없는 단어가 쏟아져 나온다. 그럼에도 사모펀드를 ‘위험하기 짝이 없는 투기상품’이라고 깎아내리는 주장은 예상보다 적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모험자본의 큰손으로 성장한 사모펀드의 싹을 짓밟아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몇개의 이슈만으로 시장 전체를 재단하는 게 섣부르다는 주장도 있다. ‘가파른 성장에 따른 성장통’이란 것이다. 정부가 부실 사태에 따른 대책을 꺼내긴 했지만, 사실상 주춤거리는 건 이런 의견에 궤를 함께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들의 시선은 다르다. 사모펀드를 특권층의 투자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불완전 판매의 온상으로 느끼는 사람도 숱하다. 사모펀드, 어떻게 해야 할까. 규제를 강화해야 할까 한번만 더 기회를 줘야 할까. 사모펀드가 기로에 섰다. 

글=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더 규제할까 놔둘까

사모펀드 딜레마

38296_51983_4236.jpg

“성장통이다, 규제 완화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 “사모펀드 시장에 규제를 가하면 공모펀드와 다를 게 뭐냐”. 사모펀드가 자본시장에 잇단 파문을 일으켰음에도 규제로 옥죄자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모험자본 육성과 성장이라는 사모펀드의 순기능까지 훼손해선 안 된다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사모펀드 시장에선 규제와 진흥의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당장은 제도를 손질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게 순서일 지도 모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사모펀드를 향한 이중시선을 취재했다.

 

글=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사모펀드 쇼크가 한국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지난해 9월부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 내역은 주요 미디어의 머리기사를 장식했고, 대규모 원금손실을 부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까지 터졌다. 

한달 뒤 헤지펀드 업계 1위 라임자산운용이 6000억원대 투자금의 환매중단을 결정했다. 투자자에게 돌려줄 돈을 당장 마련할 수 없게 됐다는 거다. 환매중단 규모는 계속 불어나 지금은 1조6000억원에 이르게 됐다. 최근엔 중견 운용사인 알펜루트도 고객 자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도 중소형 운용사 일부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한국 자본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모펀드가 전체 펀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3.2%(순자산 기준ㆍ658조8000억원 중 416조4000억원)에 달해서다. 

부실 원인으론 무분별한 규제 완화 기조가 꼽힌다. 우리나라는 국내 기업을 포식하는 해외자본에 대응할 목적으로 2004년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제도를 도입했다. 비슷한 이유로 2011년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한국형 헤지펀드)를 제도화했다. 이후 2015년과 2018년엔 관련 제도를 대폭 손질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사모펀드가 우리 경제 생태계에 활력을 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38296_51984_4316.jpg

문제는 규제를 풀어주기만 했지,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점이다. 사모펀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정부 역시 제도를 전반적으로 개선할 방안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선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숱한 사태 때문에 사모펀드를 강하게 옥죄는 게 합리적인 결정이냐는 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모펀드가 자유로운 투자 활동을 통해 자본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기업의 성장과 고용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제도를 손보더라도 장점은 살리되, 단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규제 풀린 뒤 몸집 불린 사모펀드

모든 걸 사모펀드 탓으로 돌리고 규제 강화 기조로 돌아서면 ‘금융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우려다. 최근의 부실 이슈에도 ‘고착화된 저금리’ ‘대형 금융그룹의 실적 추구’ ‘낮은 금융소비자 의식’ 등 복합적인 이유가 겹쳐 있는 게 사실이다. 사모펀드의 규제를 담당해야 할 금융위원회의 시각도 비슷하다. 

“사모펀드 규제는 대폭 풀어야 한다는 게 나의 소신”이라고 주장해온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DLF 사태 관련 후속 조치를 발표하면서 “규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성숙기 전에 겪는 성장통”이라면서 “규제강화로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사모펀드 본연의 순기능이 저해되는 ‘교각살우’의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사모펀드를 사이에 두고 ‘규제 강화’와 ‘시장 진흥’을 동시에 달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모펀드의 장점과 단점을 명쾌하게 구분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라임ㆍ알펜루트의 환매중단 사태를 부추긴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의 사례를 보자. TRS는 쉽게 말해 펀드 운용사가 투자자 돈 100억원을 모으면, 이를 담보로 증권사가 100억원을 더 빌려줘 200억원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증권사는 미리 약정된 수수료를 챙기고, 운용사는 투자자산에서 나오는 이익을 가져간다. 운용사 입장에선 적은 돈으로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장점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이익이 나면 그만큼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사모펀드 시장에 TRS 기반의 응용상품이 숱하게 많은 이유다.

38296_51985_4346.jpg

하지만 단점도 뚜렷하다. 투자자산의 초과 이익뿐만 아니라 손실도 운용사가 감당해야 한다. 투자자 입장도 곤란해진다. 펀드 손실이 나면 운용사는 증권사에서 빌린 돈부터 갚아야 하므로, 개인 투자자 손실은 더 늘어나게 된다. 펀드 투자자산의 처분 권한도 증권사에 있다. 알펜루트의 경우, TRS를 제공한 증권사들이 갑작스럽게 투자금 상환을 요구하면서 환매중단 결정을 내리게 됐다. 라임자산운용 역시 TRS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이 거래를 끊으면서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다.

만약 정부가 ‘투자자 보호’를 명목으로 TRS 제도를 손보면 어떻게 될까. 그만큼 기대수익이 낮아지기 때문에 투자자를 끌어 모으는게 여의치 않아진다. 총 투자금액이 감소하는 만큼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신뢰 없이 성장할 수 있나

중견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는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리스크를 동력으로 몸집을 불려온 셈”이라면서 “위험을 완화하면서 균형 있는 성장을 할 수 있는 솔로몬 같은 방안이 있었다면 진작에 실행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사모펀드의 규제를 강화하거나 또는 완화할 때 확실한 미래비전을 설정해야 하는 이유다. 

“모험자본의 육성과 발전이란 본래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투자 자체를 위축시키는 조치는 불필요하다”는 사모펀드 관계자들의 항변과 “신뢰를 잃은 시장이 성장에 성공한 경우가 없었다”는 현실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성희활 인하대(법학전문 대학원) 교수는 “사모펀드의 새로운 금융기법이 금융시장의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제도와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스탠다드 좇던
사모펀드 부실만 커졌네

사모펀드 사태 뭐가 문제인가

38261_51913_4613.jpg

파생결합상품(DLF) 사태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사모펀드 시장을 향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법과 편법을 저지른 금융회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금융당국도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인다. 시장의 활성화만 좇은 금융당국의 규제완화가 사모펀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한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해봤다. 
 

글=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사모펀드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8000억원가량이 판매된 DLF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상품에서 손실이 확대하고 있어서다. 라임자산운용도 마찬가지다. 부실자산 매각·수익률 돌려막기·불완전판매 등 환매 중단으로 제기된 의혹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중간 실사 결과, 라임자산의 손실률은 최대 50%로 추산된다.

당연히 사모펀드를 기획·판매한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소비자를 기만한 각종 편법과 불법이 판쳤기 때문이다. DLF 사태로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문책 경고의 중징계(금융감독원)를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사모펀드 사태의 책임에서 금융당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시장의 일침이다. 사모펀드를 활성화하겠다며 풀어 놓은 규제가 최근 사모펀드 사태를 키운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활성화 과정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한국형 헤지펀드(사모펀드)의 기틀이 마련된 건 2011년 ‘헤지펀드와 프라임브로커 관련 모범규준을 제정’하면서다.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활성화하는 국제적 흐름, 글로벌 자본경쟁 시장의 참여, 투자자의 요구 등이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한국형 헤지펀드의 도입에도 사모펀드 시장의 성장세는 더디기만 했다.

그러자 2013년 12월 금융당국은 ‘자본시장의 역동성 제고를 위한 사모펀드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의 헤지펀드 순자산 비중은 8.83%에 이르지만 한국은 0.09%(2012년)에 불과할 정도로 모험자본인 사모펀드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저금리 기조에도 시장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만 쏠리고 있다는 것도 사모펀드 활성화의 명분이었다.

38261_51914_4615.jpg

정부의 사모펀드 규제완화 방안은 2015년 7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하면서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활성화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의 설립기준을 자기자본 60억원 이상에서 20억원 이상으로 변경해 진입 문턱을 크게 낮췄다. 더불어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아야 했던 규정을 등록제로 전환했다.

사모펀드 운용사 등록제에 반발한 곳은 연기금이다. 등록제가 운용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금융당국의 인가가 안정적인 사모펀드 운용사임을 인증하는 필터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기금의 우려는 투자자의 책임 강화하는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로 비치면서 무시됐다.


2011년 등장한 한국형 헤지펀드

등록제 시행으로 2015년 19개였던 사모펀드 전문 자산운용사는 지난해 217개로 11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국내 1위 자산운용사인 라임자산에서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 것에 비춰보면, 연기금의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던 셈이다.

2013년 발표한 개편방안에서 설정한 개인투자자의 최소투자한도는 5억원이었다. 사모펀드의 위험성을 감안해 일반투자자의 투자자제한 금액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자본시장연구원도 제도 도입초기에는 최소투자금액 기준을 적용해 수적으로 접근하고 점진적으로 순자산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가 최소 투자한도 규제가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반발했다. 시장에선 최소 투자한도가 도입되면 일반투자자의 접근이 제한돼 사모펀드 시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는소리까지 나왔다. 언론도 사모펀드를 키운다던 정부가 뒤통수를 쳤다며 금융업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 때문인지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개인투자자 최소투자한도는 1억원(경영참여형 3억원)으로 낮아졌다.

38261_51915_4615.jpg

이뿐만이 아니다. 사모펀드 설립 시 보고해야 하는 사항을 16개 항목에서 7개 항목으로 줄이고, 보고 주기도 분기에서 반기(자산 100억 이상)와 연간(자산 100억원 미만)으로 완화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 실장은 “사모펀드의 활성화는 필요했다”면서도 “사모펀드의 주요 세부내용을 보고하지 않는 등 투명성이 약한 게 문제였다”고 꼬집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로 사모펀드 전문 자산운용사 수는 크게 증가했다. 2015년 2조7500억원에 불과했던 한국형 헤지펀드의 순자산 규모도 34조5300억원으로 15배 가까이 늘어났다. 문제는 사모펀드 시장이 양적 성장을 할 때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은 더 허술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2018년 ‘사모펀드 감독프로세스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사모펀드 감독시스템을 간소화했다.

사모펀드 점검표를 배포해 운용사가 사모펀드를 자율점검하고, 관련 내용을 사후 보고 시 첨부하도록 했다. 더불어 사후 보고서 전수심사를 폐지하고 보고서 중 일부를 표본 추출해 시장동향과 특이사항을 점검하는 형식으로 바꿨다. 인력 부족 등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이유였다.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기조와 허술한 관리·감독이 사모펀드의 일탈 가능성을 높인 셈이다.


인력 부족 탓에 허술해진 관리·감독

전문가들이 이제는 사모펀드의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송홍선 실장은 “사모펀드 시장의 성장과 규제완화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며 “사후보고 강화 등을 통해 시장 성장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은 “시장 활성화만 노린 규제완화가 사모펀드 사태를 키웠다”며 “규제 완화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지지만 처벌 규정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선진국 금융사가 국내 금융사보다 문제가 적은 이유는 강력한 처벌 규정이 있기 때문”이라며 “불법·편법으로 금융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징벌적 과징금·시장 퇴출 등의 강력한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