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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상민 작가]

사소한 것들의
사소할 리 없는

길걷수다 : 건축가와 사진작가

# 박용준은 건축가다. 어릴 때부터 ‘쓱싹쓱싹’ 그리길 좋아했는데, 꿈을 이뤘다. 오상민은 사진작가다.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길 좋아했는데, 꿈을 이뤘다.

 

# 둘은 꼬맹이 때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둘의 서로 다른 시선은 때론 교차하고 때론 흐트러진다. 

# 둘은 건축가와 사진작가로서 평범한 마을을 보기로 했다. 사소한 것들의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조명하자는 게 소소한 목표다. 이른바 ‘길걷수다’ 프로젝트,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 
둘째, 너무 당연해서 의심해 보지 않은 것들
셋째, 평범한 우리 마을 속 사소한 것들 

이 모든 것을 고찰하고, 의심하고, 공유한다. 

# 프로젝트는 창신동의 좁고 경사진 골목길을 마냥 걸으며 시작했다. 우연히 발견한 방범창살의 추억을 더듬으며 우린 수다를 떨었다. ‘길을 걸으며 수다 한바탕 떨어보자(길걷수다)’는 우리의 프로젝트명처럼. 
 

기획‧취재

 

글=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제작=영상제작소 Video B

그 집의 창살에 나비가 앉았네

제1편 창신동 방범창살의 추억

건축가와 사진작가. 둘은 창신동을 걷는다. 옛것의 향기와 정취가 뭉클하게 흐르는 그곳. 문득 낡은 방범창살에 시선이 간다. “어릴 때 저 창살에 끼었었지(사진작가).”“맞다, 맞아(건축가).” 둘의 맞장구 사이에서 기억이 살아난다. 주변을 둘러본다. 둘만 보기엔 아까운 추억들이 샘솟는다. 길걷수다 첫번째 발걸음, 창신동 방범창살 편이다.

지금보니 머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창살의 폭이 좁다. 내가 큰 건지 창살이 좁은 건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 모양새였다는 점이다. 그날의 아픔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진=오상민 작가]

1990년께, 서울의 한 복도식 아파트 2층. 열살 전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집에 들어가려 현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당연히 열릴 줄 알았던 문은 열리지 않고 잠잠하다. 문을 힘껏 당겨도 요지부동. 작은방 창문을 열어 엄마를 불러본다.

# 사건의 시작
 
“엄마! 엄마!” 집안은 조용하다. 엄마는 어디 간 걸까. 보통 이런 경우, 아이들은 두가지 정도의 선택지에서 고민한다.
 
첫째, 엄마가 올 때까지 집 앞에서 기다린다.
둘째,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다시 온다.

이 아이는 첫째도 둘째도 아닌 셋째 선택을 한다. ‘창문으로 들어간다’.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창문으로 집에 들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창문은 넓고, 아이는 작다. 그 아이는 창문으로 집에 들어가는 방법을 다시 한번 그린다.

1. 창문을 연다.
2. 창문턱에 올라선다.
3. 방범창살을 통과한다.
4. 집안 도착, 성공.
 
아이가 집에 들어가기 위해 창문 앞에 선다. 창문을 최대한 활짝 연다. 창문을 가로막고 있는 타원형의 창살이 등장한다. 언뜻 몸이 들어갈 만하다. 그래, 진입구다.

대각선 방향의 타원형 구멍. 바로 저 구멍이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진=오상민 작가]

창살을 잡고 창문턱 위로 펄쩍 뛰어오른다. 타원형 공간에 먼저 팔을 넣고 머리를 집어넣는다. 조금 끼는 느낌이지만 살짝 고개를 트니 쉽게 들어간다. 곧바로 어깨를 접어 넣는다. 약간 걸리는 느낌, 통증이 살짝 느껴지지만 구겨 넣는다. 상체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손으로 창살을 밀면서 몸을 집 안으로 빼내본다. 몸만 빠지면 입성 끝. 그런데 아차! 골반이 살짝 낀다. 몸을 살짝 틀어보지만 아프기만 하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된다. 한번, 두번, 아니 여러번 시도해본다. 몸을 이쪽저쪽으로 크게 틀어본다.

정말 아프다. 직감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턴 ‘후퇴’다. 들어온 반대 방향으로 상체를 빼낸다. 분명 좀 전에 들어갔던 어깨, 팔, 머리가 빠지지 않는다. 뭔가 잘못됐다. 앞뒤로 몸이 걸려버렸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 버린다.
 
아이는 생각한다. 뭐가 잘못된 걸까. 엄마는 어디 갔고 문은 왜 잠겨있으며, 난 왜 창문에 끼어 접힌 채로 걸려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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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상민 작가]

# 마지막 승부
 
아이가 끼어있는 타원은 4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하다. 아이는 이런 자세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다시 집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사실 방금 전 골반이 끼었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바지를 벗는 거였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소소한 감정 따윈 중요하지 않다. ‘집에 들어가는 최선의 방법’만 생각하기로 ‘바지 벗기’를 결행한다.
 
다시 힘을 모아 양팔로 최대한 방범창살을 밀어낸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 정말 힘껏 몸을 민다. 골반이 걸린다. ‘앗! 바지가 없지.’ 정말 아프다. 피부까지 긁힌다. 그럴수록 더 세게 민다. 몸을 더 앞쪽으로 기울인다. 더 힘을 준다. 쏘옥~ 척! (침대) 꿀렁~ 성공!
 
드디어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골반이 아프다. 피부가 붉게 부어오른다. 피가 맺히고, 멍도 올라온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날 이 아이는 평생을 잊을 수 없는 방범창살의 기억을 머리에 새겼다.
 
시간이 흘러 열살의 아이는 마흔살의 어른이 됐다. 창살에 낀 아이는 사진작가가, 나는 건축가가 됐다. 언젠가 창신동에 있는 내 건축사사무소를 찾아온 친구와 함께 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그날의 기억을 소환했고, 우린 수다를 떨었다. 문득 시선에 들어온 방범창살에 친구의 눈이 번쩍 뜨인다. “찾았다! 바로 저 창살에 내가 끼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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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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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상민 작가]

소소한 창살의 추억은 내 친구만의 특별한 기억은 아닐 거다. 창살 문양마다 혹은 창문 하나마다 비슷한 듯 다른 각자의 추억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마을을 걸어보니, 골목마다 각기 다른 방범창살의 독특한 패턴,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요즘의 방범창살은 대부분 다 비슷한 모양인데, 왜 그 이전의 방범창살들은 패턴․문양․색깔 등이 다양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우린 시간 나는 대로 창신동을 걸으면서 옛 방범창살을 건축가와 사진작가의 눈으로 보기로 했다. 흥미로웠다. 사진작가의 눈엔 꽃과 나비가 보였다. 건축가의 눈엔 지금과 다른 패턴과 문양이 들어왔다.

옛것이 차라리 요즘 것 같구나

창신동 방범창살의 고찰

몇주 동안 우리는 시간 나는 대로 더 많은 창살을 찾아 골목을 탐색했다. 창살을 찾는다는 목표를 정하고 골목을 둘러보니,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평범한 창살부터 독특한 문양이 있는 창살까지 다양한 종류가 눈에 들어온다. 건축가와 사진작가의 길걷수다 창신동 방범창살 두 번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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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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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상민 작가]

요즘 방범창살 대부분은 감옥의 철창살처럼 단순한 모양이다. 옛 창살들이 다양한 형태와 장식으로 만들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왜일까. 현장답사로 수집한 자료의 분석을 통해 ‘방범창살’을 이론적으로 고찰해보자.

■ 재료 고찰=옛 방범창살의 재료는 폭 1~2㎝, 두께 2~3㎜ 정도의 띠로 만들어진 철(steel)이다. 철은 강도에 비해 가공성이 좋아 장비만 있다면 구부리고 꼬거나 절단하기가 쉽다. 그래서 패턴이나 장식을 만드는 게 다른 고강도 재료에 비해 용이하다. 하지만 철은 물에 닿으면 녹이 슬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페인트칠을 해야 한다. 페인트가 방수도막을 형성해 물의 침투를 막아 철의 부식을 방지해줘서다. 이런 재료의 물리적 특성이 옛 방범창살의 다양한 형태와 색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반면 요즘 창살은 스테인리스‧알루미늄 등을 가공한 원통형 봉을 사용한다. 재료 자체가 녹이 잘 슬지 않기 때문에 옛 창살처럼 페인트를 칠하거나 유지 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다. 원통형 봉에는 때론 철근을 넣어 절단이 어렵게 개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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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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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상민 작가]

■ 제조 고찰= 옛 방범창살을 만들기 위해선 도안이 필요하다. 방범용이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할 크기의 패턴이면 충분하다. 조밀한 패턴이 튼튼하지만, 너무 조밀하면 물량이 많이 들어가고 작업품이 많이 들어 적절한 크기의 패턴이 좋다. 도안이 결정되면 철을 구부리거나 접거나 꽈서 패턴을 만든다. 철과 철이 만나는 부분은 벌어지지 않게 단단히 용접한다. 때에 따라서 나비·하트와 같은 문양을 추가한다.
 
이런 문양들은 단조로운 패턴에 재미를 주는 미적 요소일 뿐만 아니라 양쪽의 철을 고정하는 구조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방범창살의 형태가 완성되면 페인트칠을 한다. 설치 방법은 두개다. 창문에 딱 붙이거나 창살 다리를 부착해 원하는 만큼 띄워서 설치한다. 공간을 띄우면 그곳에 물건을 놓을 수 있다.

요즘 방범창살은 녹이 슬지 않는 가공된 재료를 사용해 사각의 틀을 만든다. 그 안에 원통형 봉을 10㎝ 정도의 간격으로 정렬해 설치한다. 창문이 크면 중간에 사각 프레임을 설치해 휨을 방지한다. 원통형 봉은 가공이 어렵고 유지관리 필요성이 적어 재가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색은 처음 코팅한 백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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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상민 작가]

■ 디자인 고찰=요즘 방범창살의 형태는 획일적이다. 뭉뚝하고 단순한 모양이다. 디자인됐다기보단 공장에서 찍어낸 기능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 안팎에서 보는 모습이 모두 감옥의 철창살과 비슷해 다소 유쾌하지 못하다.
 
반면 옛 방범창살은 살의 두께가 얇아 가볍고 날렵해 개방감이 있다. 다양한 패턴과 곡선의 문양들은 방범의 기능적 느낌보다 장식적 느낌이 강하다. 이런 장식성은 창밖을 보는 사람들에게 심미적 자극을 주기도 한다. 파란 하늘에 하트를 띄우거나 나비를 날리는 상상은 옛 방범창살에서만 가능하다. 건축물 외적인 측면에서도 장식성이 있는 문양과 패턴은 획일적이고 지루한 가로환경에서 다양한 표식이나 마크로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다.

비록 방범창살의 설치 이유가 ‘침입방지’란 기능적 목적이라지만, 건축물 내외부 환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모두에게 긍정적인 일이다. 그래서 일상의 시선이 닿지 않는 범죄 우려가 있는 곳에는 요즘 방범창살을 설치하되, 사방이 공개돼 있어 공공의 시선이 닿는 가로변 창에는 건축물 내외부 사용자를 고려한 옛 창살이 설치됐으면 한다.
 
창은 건물의 숨구멍이다. 사람들은 건물 안에서 창문을 통해 빛과 바람을 느끼고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창이 가진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 중요한 곳에 설치되는 게 ‘방범창살’이다. 옛 방범창살의 섬세한 패턴과 조그만 장식은 아마도 창이 가진 목적을 누려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기능에만 충실한 요즘 창살을 보며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깃든 디자인’이 필요함을 배운다. 아이러니하게도 옛것이 더 요즘 것 같고 요즘 것이 더 옛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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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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