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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농심켈로그 유튜브]

파맛 시리얼, 육포 팬티
내가 아직도 B급으로 보이니

B급 마케팅과 리스크

16년째 밈(meme)이었던 농심켈로그의 ‘첵스 파맛’ 시리얼이 마침내 출시됐다. 당시의 마케팅을 흥미롭게 여긴 소비자의 요청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첵스 파맛’만이 아니다. 요즘 유통가에선 분야를 가리지 않고 ‘B급 마케팅’이 유행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쏟아지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이목을 끌기에 제격이라서다. 하지만 B급 마케팅에도 한계가 숱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B급 마케팅의 리스크를 살펴봤다. 
 

기획·취재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제작=영상제작소 Video B

파맛첵스 [사진=농심켈로그]

7월 1일, 농심켈로그사의 신제품 ‘첵스 파맛’ 출시 소식이 SNS를 달궜다. 농심켈로그사가 우유와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은 ‘파맛’ 시리얼을 내놓은 덴 사연이 있다. 2004년 12월, 때아닌 부정선거 논란에 온라인이 들썩였다. 첵스 초코 홍보 마케팅의 일환으로 ‘첵스초코나라’ 대통령 선거를 열었던 게 발단이었다.

밀크초코맛의 ‘체키’가 당선돼야 했지만 장난기가 발동한 누리꾼들에 의해 판세는 파맛 ‘차카’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무효표 정리를 거쳐 체키가 당선됐지만 첵스 파맛은 일종의 밈(meme·온라인 상에서 유행하는 행동·양식, 혹은 이미지나 영상)으로 남았다. 농심켈로그 측은 “공식채널이나 SNS 등으로 첵스 파맛 출시 문의가 끊이지 않아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논의했다”며 “최근 단짠맛이 유행하고, 제품에 소비자 의견을 반영하는 추세여서 출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농심켈로그의 첵스 파맛 사건은 실패한 마케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업체가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서다. 하지만 16년 만에 실제로 제품을 내놓은 데다 소비자도 열광적으로 반응하면서 결과적으론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육포팬티 [사진=BYC]


유통가에서 ‘B급 마케팅’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첵스 파맛 사건이 있었던 2004년과는 소비자의 반응도, 시장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다. B급 마케팅을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곳은 식음료와 엔터테인먼트 업계다. 특히 브랜드가 많고 트렌드가 빨리 변하는 식음료 업계는 SNS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B급 마케팅을 펼친다. 

최근엔 금융업계·공공기관·자동차 업계도 각종 밈이나 B급 콘텐트로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이들 기업이 만드는 B급 콘텐트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어설픈 게 아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성스럽게, 의도적으로 만든 콘텐트다. 이처럼 대놓고 B급을 지향하는 행태를 ‘캠프(Camp·기교나 과장 등을 즐기는 태도)’라고 부른다.  

신제품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시장에서 B급 마케팅으로 포장된 신제품은 톡톡 튄다. 최근엔 샘표식품의 육포 브랜드 ‘질러’의 ‘육포 팬티’가 화제가 됐다. 지난 4월 1일 만우절에 질러 공식 SNS에는 육포 팬티 출시 소식이 올라왔다. 물론 제품 출시는 거짓말이었다. 육포와 팬티의 조합이 파맛 시리얼만큼이나 어색한데도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육포 팬티 출시 요청이 줄을 잇자 샘표는 지난 6월 속옷브랜드 BYC와 손잡고 한정판 패키지를 출시했다. [※ 참고 : 육포 팬티는 실제 팬티가 아니다. 팬티 1장과 육포 1개를 묶어서 파는 세트다.] 샘표 측은 “식품과 패션의 콜라보레이션이 자주 이뤄지고 있어 기획했다”며 “스트레스를 풀어 준다는 질러의 이미지에 맞게 웃음을 선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B급 마케팅의 활용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신선하게 유지하려 할 때도 업체들은 B급 마케팅을 사용한다. 빙그레는 만우절마다 ‘참장어싸만코’ ‘명란맛 우유’ ‘상추맛 우유’ ‘투게더 크림볶이면’ 등 맛을 상상하기 힘든 제품을 선보였다. 당연히 출시한 제품은 없다. [※참고 : 지난해 만우절 소재였던 ‘동그란 메로나’ ‘네모난 비비빅’은 실제로 출시됐다.] 펀(Fun)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게 이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대신 ‘○○○맛 우유’의 ‘단지가 궁금해’ 시리즈로 독특한 맛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리치피치맛 우유, 캔디바맛 우유 등 빙그레의 특이한 제품이 소비자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엔 B급 마케팅으로 쌓은 친근한 이미지가 있었다는 얘기다. 빙그레 관계자는 “단지가 궁금해는 의외로 신기한 맛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데 착안한 제품”이라며 “B급 마케팅은 주목도가 높아 소비자에게 쉽게 인지돼야 하는 식품 홍보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명란맛우유,상추맛우유 [사진=바나나맛우유 페이스북]

B급 마케팅은 신제품의 테스트 베드가 되기도 한다. 팔도는 만우절 이벤트로 선보인 제품을 4년 연속 출시했다. 2016년 1.2배 양을 늘린 팔도비빔면부터 2017년 팔도비빔장, 2018년 팔도비빔밥, 2019년 비락햇쌀까지 전부 세상에 나왔다. 

이중 1.2배 비빔면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정판매로 그치지 않고 정식 판매 중이다. 특히 팔도비빔장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지난 3월에는 신제품 2종(버터간장·매운맛)까지 나왔다. 팔도 관계자는 “‘색다른 즐거움’이라는 팔도 슬로건에 맞게 소비자의 의견이 직접 반영되는 재미를 보여주고자 했다”며 “특히 트렌드를 이끄는 10~20대를 집중 공략했다”고 설명했다.

팔도비빔밥 [사진=팔도 페이스북]

하지만 B급 마케팅이 상책이라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호불호가 크게 갈릴 여지가 많다.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에서 논란이 생기거나, 소비자에게 통하지 않는 경우도 숱하다. 2018년 롯데푸드는 SNS에 의성마늘햄을 홍보하면서 평창올림픽 국가대표 여성 컬링팀 ‘팀킴’의 김은정 선수를 패러디했다.

이를 두고 ‘롯데푸드가 팀킴을 지원하지도 않으면서 인기에 편승하려고 한다’며 거세게 반발이 일었다. 당시 김은정 선수의 유행어 ‘영미’를 너도나도 쓰는 상황이었는데도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롯데푸드는 논란 직후 정식으로 팀킴을 의성마늘햄 모델로 기용했다.
 
B급 마케팅으로 탄생한 제품의 파급력이 길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B급 마케팅의 핵심 감성이 ‘부조화’와 ‘황당함’인 만큼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긴 쉽지 않다는 거다. 실용성이 낮거나 희소성이 없다면 판매량도 적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샘표와 BYC가 출시한 육포 팬티 패키지는 2000개 한정수량임에도 구매수량이 441개(6월 25일 기준, 위메프)에 그쳤다. 

 

B급 콘텐트를 적절한 타이밍에 내보내는 것도 관건이다. 코로나 사태로 전국이 뒤숭숭한 올해는 많은 기업이 만우절을 조용히 보냈다. 혹여나 가벼운 농담을 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서다. 

소비자의 공감을 사는 것도 필수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온라인상에서 B급 마케팅에 힘쓰는 건 엄청난 바이럴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첵스 파맛도 2004년에 출시했다면 지금처럼 호응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떤 게 뜰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단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짚었다. B급 마케팅이라고 마냥 유쾌할 순 없다는 얘기다. 

라면사탕 [사진=농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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